"아가"

"예, 보스"

"씻고 내 방으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 섰다. 샤워실 밖 트윈사이즈 침대에서 헐벗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해 최대한 빨리 손을 움직였다.-그러나 꼼꼼하게- 뜨거운 물이 정수리 위에서부터 온몸을 적셔오고 그 온도에 하루 종일 긴장해 있던 근육들이 노곤 해진다. 하루 종일 흘렸던 땀을 지워내고 그가 선호하는 머스크향의 거품이 자연스레 온 몸의 모공을 채웠다. 샤워볼에 한 번 더 샤워 젤을 묻혔다. 조금만 더, 진해지고 싶다. 욕실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욕조는 어서 들어오라는 듯 반짝이는 윤기를 내며 나를 반기지만 혼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기에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로 자박하게 물이 차오르는 욕조를 바라만 봤다.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 욕실 문을 열자 보다 서늘한 방 안의 공기가 샤워 가운 안으로 침투해온다. 물기가 서린 안경 너머로 새 하얀 침대 시트, 그 위의 그의 동그란 복숭아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잘 여문 복숭아를 반쪽으로 가르고 흘러나오는 과즙을 모조리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에 꼴깍 침을 삼키니, 엎드려있던 그가 상체를 살짝 돌려 나를 지긋이 노려본다.



“아가, 뭐 하는 거야.”



젠장, 그가 코를 찡긋했다. 무언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 서둘러 허리를 감싸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어내고 그의 몸 위로 몸을 겹쳤다. 나보다 한 뼘은 더 작은 체구 덕에 그의 어깨 위로 내 가슴이 자리 잡았다. 묵직한 무게에 그가 끙, 숨을 내뱉고 선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몸 아래에서 타오르는 그의 체온은, 그의 성정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뜨겁다. 갈증이 난다.



그의 목 뒤에 고개를 묻고 그의 체향을 폐 끝까지 깊게 들이마셨다. 후- 분명, 나와 같은 머스크향의 샤워 젤을 쓰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의 귀와 목 뒤 사이에서는 복숭아의 감칠내만 뿜어져 나온다. 입에 힘을 주어 여린 살결을 빨자 그가 나직하게 나를 협박했다. 자국 내지 말라고 했지, 장백기. 한 달 전이였던가. 희고 부드러운 목 근처 살결을 쪽쪽 빨아대 붉게 물든 자국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선 그를 보며 석율형님이 한 참을 놀렸던 것이 기억났다. 장그래 서방 생긴 티 그렇게 내야지? 별다른 대꾸 없이 그의 복부에 가볍게 주먹을 내리 꽂자 석율 형님이 꺽꺽 거리며 웃었다.



‘장그래가 왜 저 어린 나이에 보스 자리에 오른 줄 알아?’


잠시 보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석율 형님이 내게 속삭이던 물음. 그는 나보다 훨씬 오래, 보스를 지켜봐 온 이 중 한 명임과 동시에 보스를 ‘보스’라고 부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앗.. 보스….”

“흐..흐읍.. 침대에서..는. 하앗..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하악..아”


아니, 침대 위의 날 포함하면 두 명 중 한 사람.



보스가 어떻게 그 자리에 위치했는지는 조직에 몸 담고 난 이후부터 나의 유일한 호기심 거리이자 조직원들의 보스를 향한 단 하나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어깨들은 대부분 그가 어떤 조직의 대가리에게 뒷구멍을 대주다가 그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것은 저들끼리 모여 누가 제 윗사람에 대한 음담패설을 더 더럽게 내뱉나 하는 알량한 경쟁 같은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정말 나의 보스를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이 조직이 이 토록 오래, 그리고 단단하게 도시를 장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옛날에 뭣 모르는 피래미 새끼 하나가 장그래를 덮치려고 한 적이 있었지. 우리 조직 밑으로 들어오기로 한 조직의 보스였는데, 장그래가 서류에 사인하느라 정신 팔린 사이에 장그래를 밀치고 올라탄 거야. 그래서, 그 새끼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후우… 옳지..우리 애기..흑, 잘 박네”



시멘트 통 안에서 퉁퉁 부어서, 바다 속으로 꼬로록-. 짜식, 맨 몸으로 던져 졌으면 고기 밥이라도 됐을텐데. 안타까워.



그는 절대 자신이 어떻게 보스 자리까지 위치했는지 절대 함구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뒤에서 그의 뒷구멍을 조롱하는 새끼들도 그의 미간 움직임 한 번에 벌벌 떤다는 것과



“하아..ㄱ...흡..장그래, 너...씨발..”


보스의 뒷구멍은 존나 맛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한다. 그가 입을 타이트한 드레스 셔츠를 다림질 해, 그의 옷장에 걸어 놓는 것은 내 몫이다. 저혈압의 보스는 아침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선 아이처럼 칭얼거린다. 그 귀여운 짜증을 받아내는 것 또한 온전한 나의 몫이다. 몽롱한 그를 품에 안아 식탁에 앉히고는 노른자가 톡 터지는 계란 프라이를 입에 넣어주면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입을 오물거린다. 그 통통한 입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면 그는 나직하게 욕을 내뱉는다.



“씹새끼. 아침부터”



아가, 이 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넉 달 채워갑니다, 보스.


유흥업소가 밀집한 거리 뒷 골목. 한 참 매를 맞은 뒤, 정신을 차려보니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리는 벤츠 위에 몸이 실려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나의 보스가 있었고. 왜 나를 데려왔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이뻐서’ 라고 대답했다. 하여튼, 보스는 자기 주제도 모른다. 누가 누구 보고 예쁘대 시발. 그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종종 TV뉴스를 통해 그 이름을 접했을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조직의 보스였다. 처음 그의 뽀얀 피부와 갸름한 턱선, 조악한 주먹을 보고선 남색을 즐기는 어떤 놈팽이의 정부나 되나 싶었다. 빌어먹을 부모가 진 사채 빚 때문에 끌려갔던 사무실에서 한 사내의 무릎 위에 장그래 만큼 예쁘장한 사내가 얌전히 앉아 키스를 받아내던 장면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덩치들 사이에서 ‘보스’라고 불리는 사내였으며 작은 체구와 뭇 남성들의 환심을 사는 외모와는 반대로 덩치들을 뼛 속까지 데리고 놀 줄 아는 보스 중의 보스였다.



‘네가 장그래 뒷구멍 먹은 몇 안되는 놈 중 하나다.’

‘저 밖에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새끼 욕심은’




방 까지 줘가면서 데리고 산 새끼는 너밖에 없다. 석율 형님은 보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 형님도 보스의 은밀한 부분을 맛 본 적이 있을까. 보스의 입에서 듣지 못한 사실들은 나를 질투로 눈 멀어 꼭지가 돌아버리게 만든다. 질투로 눈이 뒤집힌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내 기분도 알지 못하는 보스는 석율 형님에게 그 예쁜 눈을 훤히 웃어 접어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하도 세게 움켜쥔 주먹 아래로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지만. 나의 권한 밖이란 것을 깨달은 후로 부터는, 형님을 제외한 다른 조무래기들에게는 쉽사리 입을 열지도 않는 다는 것으로 내 자신을 위로했다.



“넉 달, 벌써?”

“네, 보스”

“흠… 이제 5구역 정도는 맡아도 되겠는데.”



그의 집에 발을 들인 이후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유일했다. 그의 위에서 그를 위해 열심히 허리 짓을 하는 것. 그 것 외에 그는 나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더러운 골목에서 나를 건져 준 그를 위한, 그에 대한 충성심 만으로 그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지만 그는 전부 마다했다. 심지어, 정사가 끝난 뒤 그를 품에 안고 잠에 들려는 나를 내 방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나는 온 몸을 그가 요구하는 충성심으로 채워 넣었다. 그를 만난 후로 나는 보스 외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백치가 돼버렸다. 그의 침실, 그의 사무실 이따금 운전수가 운전을 하는 그의 벤츠 뒷 자석. 내 아랫도리는 그를 향한 충성심으로 무장했다. 그의 엉덩이 사이를 파고드는 내 살덩이는 조금이라도 그의 끝에 더 닿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일을 맡기려 한다는 사실은 내겐 굉장한 충격이자 기쁜 소식 중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보스”

“대신, 조건이 있어”



그러나 역시 그는 한 조직의 보스 답게 호락호락 하지 않는다.



“나한테 만 충성해.”



그리고, 그는 이미 나를 간파했다.



“장그래”



그를 위해 내가 열심히 허리를 흔들던 것은 아무리 충성심으로 포장하려 해도 가리워지지 않는 내 마음임을. 이미, 충성심을 지우고서 도 그를 보면 발딱 서버리는 내 아들내미 까지도.



“씨발, 너 장난해?”



주제 모르고 욕지거리를 내뱉는 나를 보면서도 그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안에 씹다 말고 머금고 있던 빵 쪼가리가 다 보이도록 크게 웃는다. 그 청량한 웃음에 주먹을 내리 꽂고 싶다가 도 주먹을 부르르 떨며 등 뒤로 숨길 수 밖에 없다. 내 몸도 모자라 내 정신까지 지배하려 드는, 나에게 충성심을 요구하는 그 치졸한 속셈은.



“아가, 여기 침대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 그가 왜 보스 자리에 올랐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주무를 줄 아는 그는 아마 그 것이 유일한 재주이자 무기일 것이다.



“씨발, 침대로 가십시오. 보스”



그 무기가 너무도 치명적이어서, 쉽사리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의 강력한 독기. 어깨들은 그의 무기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칼날에 베이기라도 한 것 처럼 벌벌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보스와 구역 싸움을 하는 다른 조직은 그의 무기에 그의 배에 칼날을 꼽아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였고, 단속을 나온 경찰들은 제 스스로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우리 아가, 많이 컸네.”

“......”

“어디, 얼마나 날 잘 잡아먹는지 볼까?”



그리고 이 싸움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나의 상사라는 핑계로 한 것 치졸하게 나에게 보다 더 강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나의 보스가 아니라.



“보스. 엎드리십시오.”



이미 그에게 순정을 다 받쳐 살덩이를 들이미는 나 였음을.















***






사무실 밖에서 들리는 남자의 거친 신음 소리가 고막을 신경질적으로 긁어 논다. 삼정파라고 했었나. 듣도 보도 못한 패거리 놈팽이가 어쩌다 저 문 뒤에서 저렇게 악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야구 방망이가 탱탱 거리며 쇠와 부딪히는 소리와 뼈가 아그작 나는 소리, 남자의 고함, 살려 달라고 추하게 울음소리를 내며 빌어 대는 억울한 음성이 등골에 땀을 흐르게 한다. 추접스럽게 매달리는 남자의 꺽꺽 거리는 소리에도 쇠 몽둥이를 든 이상현은 거침없이 팔을 휘둘렀다. 흑. 팔다리가 묶여 있을 남자가 힘없이 몸이 묶인 의자와 함께 시멘트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문 밖은 다시 조용했다. 처음처럼.



“보스, 나가 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스는 문 밖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서류를 만졌다. 어제 오후, 그가 시킨 세탁을 마친 내가 건냈던 종이였다. 서류를 받아 들곤 쳐다보지도 않더니 이제와 확인을 하는 듯 싶었다. 흰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새하얗고도 끝이 붉다. 지난 밤 내 중심을 움켜쥐던 그 손가락이 환한 조명에서 보니 더더욱 뽀얗게 빛난다.



“아가 시킨 일도 잘하고”

“....”

“상 줘야겠네”



문 밖에 요란스러운 폭행이 끝난 지금, 이제 보스가 나가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됐음을 알려줬음에도 그는 쇠로 된 문 손잡이를 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검은 소 가죽이 반지르 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그가 책상 위로 걸쳐 앉나 싶었더니 이내 책상 앞에 얌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오늘 아침 내가 입혀줬던 그의 바지의 차가운 감촉이 나의 두 허벅지를 감싸 안았다. 그의 허벅지 아래 ‘사장 장그래’ 다섯 글자의 명패는 이미 그 존재가 수치스러울 정도로 장그래의 살에 짓눌려진다. 골반을 살짝 들게 해 걸리적 거리는 명패를 치워버리고, 내 허리를 옭아매는 그의 두 다리에 몸을 밀착시켰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앙증맞은 똘똘이가 내 녀석과 온기를 나누려 애쓴다.



아직 풀이 죽긴 한참인 내 아들을 그의 구멍에 꽂아 넣으려고 할 때 였다. 거친 쇠가 달칵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씨이-발, 장 백기 새끼. 니 보스 중요한 일 앞둔 거 안보이냐. 씨발새끼가 발정이 나서 사무실에서 상사를 덮쳐?”



좆도 모르는 형님. 아니 씨발 한석율 새끼가 나에게 거친 욕을 내뱉었다. 아, 존나 억울하다. 지금까지 덮친 건 내가 아니라 보스라고. 이제 막 쑤시려 던 참인데 시발. 석율형님의 등장에 보스는 태연하게 제 위의 나를 밀치고는 책상 위에 나 뒹구는 속옷을 주어입었다. 그 와중에도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이, 방금 전 나를 집어삼켰던 구멍을 훤히 보여준다.



“아가, 마무리는 있다 하자.”















사방이 시멘트로 발린 퀘퀘한 공기의 방 안, 그의 취향인지 모를 노란 전등 하나만이 어두운 방 안에 빛을 내뿜고, 어깨들이 사방을 둘러 싼 방 한 가운데. 이미 매를 맞아 온 몸이 물에 젖은 미역처럼 흐물거리는 사내 하나가 얌전히 엎드려 있고 맞은 편에는 솜이 톰톰한 의자 위에 앉은 나와, 내 위의 장그래가 있다.


아까 다 처리하지 못해 여전히 두둑한 내 위로 보스의 구멍이 묘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시발, 당장이라도 벗겨버리고 싶었다.




“고개 들어.”



나직하게 뱉어대는 보스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살기를 뿜고 있는 그의 뒷통수. 가는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자 서늘하게 눈을 내리 깔던 그가 나를 보곤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온 서늘한 눈동자가 제 앞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 범벅이 된 놈을 노려보았다. 더불어 긴장한 어깨들이 등을 곧게 피고 시선은 정면을 향했다. 빡빡이들이 빼곡히 사면을 가득 채우고 서 있는 좁은 방 안임에도 장그래가 뽐는 냉기는 주체할 수가 없다.



“야, 이 새끼야. 고개 들라고.”




그는 구둣발로 제 앞에 처참히 무너져있는 놈의 머리를 툭툭 쳤다. 시발, 내가 월급 받자마자 선물한 구둔데 녀석의 피가 구두 끝을 적셨다. 보스가 가하는 힘에 쓰러진 놈의 고개가 힘없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쿨럭 쿨럭, 맑은 공기를 마신 놈이 기침을 하며 묽은 피를 토한다. 피 비린내가 보스를 품에 안고 있는 나의 코 까지 자극 시켰다.




“그래, 삼정파에서 보냈다고?”

“......”

“새끼가, 꼬락서니 부터 번지르 한게 맘에 안들더니.”

“...살려, 줘..”



내 위에서 일어난 장그래는 거칠게 그의 복부를 발 끝으로 강타했다. 윽, 이미 지칠 때로 지친 녀석이 몸을 쪼그리며 충격이 가해진 제 배를 감싸려 들지만 차분하게 한 쪽 다리에 체중을 실는 보스를 당해내기는 힘들다.



“어디서 반말이야, 새끼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흑.. 살려, 주..세요. 씨바..알..”

“옳지, 잘 한다.”




쪼그려 앉은 보스는 그의 앞머리를 잡고 고개를 들렸다. 힘없이 딸려 올라가는 그의 머리. 한 달 전, 조직에 들어오겠다며 홀로 사무실에 발을 들였던 녀석이다. 허나, 우습게도 삼정파의 끄나풀이라는 이 새끼는 보통 이 생활에 발을 들이는 놈들은 혈혈단신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요즘은 중학생 일진 무리 까지도 그 선배와 조폭 말단 녀석들이 꽉 쥐고 있어 생활에 발을 들일 루트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몰랐나 보다.-나는 분명 예외 사항이다.- 분명 이 새끼도 같은 루트로 발을 들였을 것이면서, 이런 기본사항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스파이 노릇을 하려했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래, 네 계획이 뭐였어?”



뜬금없는 제 3자의 방문을 보스가 무작정 받아드릴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상당히 계산적이면서도 상대보다 두 수를 더 앞서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외근에 돌아온 날 저녁, 집에서 넥타이를 풀면서 목 근육을 까딱이며 그가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어설픈 새끼가 간 보자고 덤비는데, 좀 놀아줘야겠어.’


네가 그 새끼구나.



“... 보스가..흐윽…. 게이 새끼.. 따...먹기만 하면 된다고. 보스 사무실로 침입하라 명..령 했..습니다. 흐읍...절대 제 의지가 아니였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조직을 우습게 본 것도, 보...장그래..보스를 얕잡은..것도 절대 아닙니다.. 흐윽”

“그래, 내 사무실에서 나랑 떡쳐서 얻어 내려는게 뭔데.”

“....흐으윽. 회계 장부, 세탁 내역..이지 말입니다..흑. 언론에, 언제든… 흐읍 꼰지를 수 있는...흑..걸로”



조폭들 세계에서 흔히 이뤄지는 돈세탁은 다른 범죄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마약 거래, 매춘, 인신매매. 모두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먼 일임은 물론이거니와, 그 몸집이 큰 조직일수록 경찰이 한 번 건드리면 그 뿌리까지 뽑아야 할 일이 태반이라 경찰 조차도 피곤해 한다. 조직은 거액의 현금을 주머니에 찔러주고 경찰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닫으면 이 세계는 평화롭게 돌아간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서 그 것을 정의롭게 타도하고자 할 용기 있는 일반인은 전혀 없다. 허나, 돈세탁은 다르다. 욕망의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경제 사범은 중 범죄이다. 다른 배덕한 범죄에 둔감한 대중들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그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여론이 몰린 이상 돈을 받아먹는 경찰들도 수사를 건너 뛸 수는 없는, 예민한 사항이다. 해당 구역의 경찰들이 암암리에 모른 척 해준다 하더라도, 언론으로 사건이 넘어간다면 조직이 휘청 거리는 것은 일 순간이다.



“그랬구나, 우리 아가.”


보스는 여전히 쪼그려 앉아 힘없이 늘어진 새끼의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얼굴을 관찰한다고 고개를 숙인 장그래의 얼굴이 그 새끼의 얼굴과 지나치게 가깝다. 멀리 서도 볼 수 있는 녀석의 얼굴은, 조폭 답지 않게 긴 앞머리에 쌍꺼풀 없이 옆으로 찢어진 눈과, 자연스럽게 햇빛에 그을린 구리 빛 피부. 쓰러진 등 짝 위로 와이셔츠가 땀에 달라붙어 보이는 동그란 근육들이, 그의 환심을 사기에는 충분하다.



“새끼. 예쁘게 생겨 가지곤”



뭐, 시이발. 보스가 더 말을 잇기 전에 얌전히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구두 뒷 굽으로 개같은 자식의 머리를 공 차듯 차버리자 끈적한 피가 시멘트를 적시며 보스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개 같은 새끼. 누가 누구랑 떡을 쳐? 시팔, 좆도 병신같은 새끼가.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어 발길질을 하면 그대로 몸을 눕혀버리는, 딱히 나에게 대항 조차 하지 못하는 새끼의 복부와 명치, 허벅지를 차례대로 끊임없이 강타했다. 너 같은 새끼는 시발, 맞아 죽어야 정신 차리지? 내뱉던 숨이 명치를 강타하는 내 발등에 역류해 그가 괴상한 호흡을 뱉어낸다. 쿠흑..큭…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어깨들은 속으로 재밌는 흥미거리라도 생긴 냥 구경하고 싶겠지만, 그러다간 그들 앞에 쓰러져 있는 이 사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꼴을 볼 것이란 것을 알기에 얌전히 열중쉬어 자세로 정면 만을 응시하고 있다.



“장백기 이 새끼야. 네가 초상 치를 거 아니면 그만 해.”




뒤 늦게 석율형님이 나를 말리는 말을 뱉어댔지만 말 뿐일 뿐. 사실 그도 딱히 나를 방해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가 뱉어대는 말과는 반대로 멀찍이 서서 팔짱을 끼곤 웃어보이는 것을 진작에 알았기 때문이다.


“씨발, 이 좆마니가 감히 누구를, 어?”


저를 향한 욕지거리에 녀석은 이미 한참 전 의식을 잃은 듯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는 반응 조차도 하지 않았다. 죽었나. 허나 발길질을 멈추자 색색 거리며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자 다시 한 번 그의 명치에 구두 굽을 꽂았다. 구리빛 피부가 찌든 피와 먼지로 거무튀튀하게 변모했다. 후우, 거친 숨이 멈추질 않았다. 새끼를 후려쳤던 발은 녀석의 얼굴처럼 피와 번지로 잔뜩 찐득하게 더러워져 버렸다. 시팔, 존나 아깝다. 보스 집에 살게 된 날. 그가 첫 출근으로 사준 신발 중 하나다.



“아가, 왜 이렇게 흥분했어. 가자”



크하하하하, 보스는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더니, 박수 까지 쳐가며 깔깔거렸다. 그 얼굴이 노란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방 구석을 환하게 채운다. 하여튼, 내 상사이지만 그래서 그에게 차마 말을 할 순 없지만 장그래는 존나 예쁜 썅년임이 분명했다.



“아까 못했던 거 마저 해야지 예쁜이?”



보스는 이상현에게 고개 짓을 하며 이미 사람의 형체를 잃어버린 개새끼를 가르쳤다. 묻어. 곧바로 건물을 나서 차로 향하는 보스의 뒤를 쫓아갔다. 좀 전 정사를 끝내지 못한 것이 그도 아쉬운 지 최대한 빨리 걸으려 보폭을 좁혀 걷는 뒤뚱거림이 하여튼 귀여웠다.



그가 차에 몸을 실자 마자 옆에 따라 붙어 거칠게 문을 닫아버리곤, 그를 내리 눌렀다. 아가, 많이 급한 거야? 귀엽네. 그가 내 턱 밑을 쓱쓱 쓰다듬었다. 그의 개가 돼 버린 기분이었다. 좋다. 사랑 받는 기분.



“보스”

“응, 왜 아가.”

“보스는 예쁜 사람만 보면 아가라고 합니까?”



보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그렇게 한 참을 내 밑에 깔려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쓰더니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 피식, 허튼 숨이 빠지는 소리를 냈다. 주름진 미간이 풀어진 대신, 한 쪽 입꼬리가 예쁘게 올라갔다.


‘그랬구나, 우리 아가’

‘새끼. 예쁘게 생겨 가지곤’



우리 아가가 그래서 흥분을 했구나. 보스는 담담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 맨 위까지 분노가 차오른 나와는 반대로 그는 한껏 여유로운 손으로 내 머리, 귀, 뺨을 만져 댄다. 평소처럼 부드럽게 다가오는 살결의 촉감에 정신이 흐물흐물 해져버리려다 아차 싶어 다시 한 번 그를 노려보았다. 사무실에서 그를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쳐다본다면 이미 충분히 고자가 되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니 그의 위에서는 충분히 이해를 해줄 사람이었다.



“나한테만 그렇게 하십쇼”

“뭐?”

“저한테만, 아가라고… 하십쇼. 보스”



내 머리와 귀를 만져오던 그가 손을 내려 정확하게 두 눈을 맞춰왔다. 주제 넘었나. 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는 것 만으로도 긴장해서 지금 처럼 벌벌 떨리는 주제에 감히 그에게 명령을 했다. 아니, 사실은 부탁이었지만. 아니 꼽게 보는 그에게는 명령으로 들리기 충분한 어조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


그게 말이지. 한 번도 그에게 내 뱉지 못했지만 매일 밤 그를 안으며 수 백 번은 생각했었던 우리의 관계를, 이제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스… 애인 아닙니까.”




용기 내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 했다. 그는 표정 변화가 없다. 수 백 개의 근육이 있다는 얼굴이, 단 한 가지의 근육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입 안이 바싹 말라갔다. 그의 위에서 도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목을 끌어안는 그 손길이 없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푸흐, 귀여운 새끼”



보스는 제 뒤를 쑤셔오는 내 어깨를 껴안고선 그 말이 그렇게 날 화나게 했냐며 끙끙거렸다. 그 예쁜 새끼가 개새끼네, 그치? 시발. 그 말에 화가 치밀어 올라 더 세게 그를 밀어붙였다. 반대쪽 차 문에 그의 정수리가 쿵쿵 거리며 부딪친다. 좀 당해봐. 아흑..흡..아앙. 신음을 뱉어대는 그의 입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이에게 절대 예쁘다느니, 아가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은 아마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애인’이라는 단어에 그가 부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 것이 유일한 위로 거리이자 내 조직 생활의 전부일 듯 싶다.



보스가 담배나 사오라며 보내버린 기사는 문 밖에서 뒤뚱 뒤뚱 흔들리는 차를 지키고 한 참 담배를 뻑뻑 피웠다. 성격 급한 보스는, 저를 집으로 귀가 시킬 의무가 있는 기사의 역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




“우리 예쁜 아가, 술 한잔 따라볼까”



계약서를 쓰기 위해 자리잡은 룸. 상대 쪽 보스의 딱가리 한 마리가 보스의 왼 편에 자리잡았다. 보스는 그에게 술잔을 들이밀었다. 맞은 편 상대 보스는 껄껄 거리며 제 딱가리에게 얼른 술을 따르라고 눈치를 줬다.


“허허, 장 사장. 그 잔 마시고 사인 하는건가”


그래봤자 똑같은 조폭인 주제에, 그 것도 못나가는 조폭이라 장그래에게 설설 기는 주제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보스에게 사인을 종용하는 김 사장은 만족스럽게 술을 넘기는 장 그래를 보며, 제 딱가리에게 한 번더 눈치를 줬다.


“음, 우리 아가가 주는 술맛이 좋네”



거래처만 아니였어도 니 새끼는 진작에 내 손에 목숨이 끊겼을건데. 보스 옆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새끼를 노려보았다. 시발, 미치도록 보스의 취향이다.



“보스. 이만 일어나시죠. 다음 일정 가셔야합니다.”


녀석은 일단 이 거래가 끝난 뒤 손 봐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우선 해야할 것은 녀석과 보스를 빨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재촉하는 목소리에 보스가 술잔을 챙- 하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八자를 그리며 잔뜩 찡그려진 미간와 발간 귓가. 또 탐탁지 않나 보다.


“다음 일정이 뭔데.”

“...... 정 사장님과 미팅이..”

“우리 애인이랑 침대로 가는 거?”


헤죽헤죽 웃느라 치켜올라간 뽀얀 볼살이 앙큼해보인다.

2015. 5. 4. 00:21 · RSS · 트랙백 · 댓글달기 · 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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